하얀 포타 화면을 보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건 처음이네요. 글재주가 좋은 편도 아닌데, 지난 2년 간 애들에 대한 글을 쓰며 괴로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애들 얼굴만 봐도 쓰고 싶은 게 생겼었고 소재만 던져줘도 스토리가 줄줄 펼쳐졌었습니다. 저에게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트위터에서 습관처럼 말했던 완식 호모, 내 생애 최고의 알페스라는...
Camino - Dulce la vida w.데자와 구석을 좋아하는 편이다. 작은 틈새에 몸을 말아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형은 그런 나를 보고 무슨 고양이냐고, 박스 하나 갖다 주겠다며 종종 놀리곤 한다. 그렇다고 이렇게 꼼짝없이 뭉개지고 싶은 건 아니다. 분명 들판 위에 돗자리를 깔고, 코끝을 스치는 살랑살랑한 바람을 느끼던 중이었는데 어느 순간...
Camino - Buen Camino! w.데자와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길을 걷다가 혼자 소리를 지르곤 하는. 뭐랄까, 누구나 한 번씩은 한다는 이불킥 같은 건데 나의 경우엔 그게 밖에서 드러나서 문제였다. 쪽팔리지 않은 건 아니다. 해놓고 아차 싶으면서도 매번 그랬다. 왜 이러는 걸까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어떤 특정 사물이나 환경에서 별안간 떠...
Camino - 길에 돌도 연분이 있어야 찬다 w.데자와 일단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안 된다. 독일에서 산 유심이라 빼버리면 끝이다. 카톡을 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대화창이 하루아침에 알 수 없음으로 뜬다. 순간 간이 철렁했다. 생각해 보니 나한테는 지훈이 한국 번호가 없다. 이 카톡은 만난지 얼마 안됐을 때 알베르게에서 와이파이 잡고 아이디 ...
Camino - Alle Wege führen nach Seoul w.데자와 일단 지르긴 했지만 솔직히 겁났다. 한 대 맞을까봐. 다신 보지 말자고 할까봐. 내 할 말 다 하고 얌전히 앉아 지훈이의 처분을 기다리는데, 무릎 위에 나란히 올려둔 양손이 휙하고 채였다. 지훈아 진정해라. 니가 아귀도 아니고. 암만 빡쳐도 손목은 안 된다. 속으로 호달거리는 주제...
Camino - Der gerade Weg ist der beste w.데자와 삶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반년 전 칠레 산티아고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예상하지 못했 듯, 한 달 전 생장에서 여정을 시작할 때는 지금의 이 그림을 상상하지 못 했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옥토버페스트에 알게된지 고작 4주차인 세 살 연하 동...
Camino - de camino a la vereda w.데자와 결국은 오고야 말았다. 산티아고. 도로 표지판에 지명이 떴을 때부터 온몸에 전율이 흘러 옆에 있던 지훈이를 끌어안았다. 아직 한참 남았어요, 형. 이거 25km 남았다는 표지판이잖아요. 시큰둥한 말투와는 달리 지훈이 역시 흥분됐는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마지막 숙소부터 산티아고까지는 ...
Camino - Me he empapado en el camino w.데자와 호텔 묵는 김에 늦잠을 자기로 했다. 평소엔 새벽 같이 일어나서 최소 20~30km 걷지만 오늘은 체크아웃 시간까지 느긋하게 뻗대려고 목표도 그만큼 적게 잡았다. 침대 매트가 좋아서인지 일어났을 때 몸이 한결 가뿐했다. 누운 채 기지개를 켜자 맨다리 아래 뽀송한 시트의 감촉이 느껴...
Camino - camino bifurcado w.데자와 요즘 계속 지훈이랑 같이 걷고 있다. 얘도 성격이 급한지 후딱후딱 걷는 편이라 억지로 속도 맞추고 이런 게 없어서 좋았다. 원래 말수가 적은 타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혼자 한참 떠들다 깨달았지. 리액션이 좋아서 몰랐었는데, 가만히 보니 내가 먼저 말 걸지 않는 이상 지훈이가 먼저 입을 여는 경우...
Camino - a medio caminow.데자와 그래봤자 한 방향으로 난 길이다. 늦게 출발한 걸 만회하기 위해 평소보다 빠르게 걸었더니 오후 두시 즈음하여 남자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따라잡고 인사라도 건넬까 했으나 어젯밤 울던 모습이 떠올라 말 걸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묵묵히 걸었다. 걷다 보니 조금 이상한 걸 ...
Camino - camino pedregoso w.데자와 몇 없는 친구들에게 한국 뜬다고 얘길하자 네 놈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어디로 이민가냐고 묻는 말에 차마 산티아고 순례길 한달 가는 거라고 할 수가 없어서 정착할만한 곳인지 둘러보러 나가는 거라고 대답했다. 출국 전 마지막 술자리에서 배진영이 진짜로 떠나는 거냐며 팔 붙잡고 눈물 글썽거리...
Camino - La vida no es un camino de rosas w.데자와 친구들이 다 미쳤다고 했다. 나이 서른에, 멀쩡하게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고 난데없이 배낭 여행이라니. 정확히 말하면 여행도 아니지. 오로지 걷기 위해 떠나는 타지(他地), 이국(異國). 그럴 거면 차라리 국토대장정이나 하라는 친구놈에게는 허세병 걸려서 그런 거라고 둘러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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